한약 이써/신인류의 한방-소설로 풀어본 한방

<2016년, 설연의 차 안>- 신인류의 한방 1

경희생한약국 2016. 9. 29. 12:08

 

“사람들은 무슨 내가 드라마만 찍으면 연애를 한 대?”

설연이 휴대폰 속 기사를 읽으며 흥분했다.

“아니냐? 전적이 좀 화려해야지.”

매니저 수진이 한숨 섞인 반응을 보였다.

“내 나이 이제 스물넷이야. 남자 좀 사귀면 어때? 연예인이 연예 좀 하겠다는데 뭐!”

설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연예가 그 연예가 아니고, 연애다 이것아. 그리고 말 잘했다. 니 나이 이제 스물넷이지? 데뷔 5년차에 드라마, 영화를 열편도 넘게 찍었고, 거기서 여덟 명을 사겼지? 들키지나 말어. 이년아.”

설연이 옆으로 눈을 흘겼지만 그 눈 속에서 수진은 알맹이 하나를 집어냈다.

“또냐? 또 사겨?”

“아 진짜! 나 어떡해?”

“어디까지 찍혔어? 열두 살이나 많은 놈이 뭐가 좋다고. 그 놈 여자 밝히기로 유명하드만 너는 그런 놈이 좋냐?”

“언니, 나 이사람 진짜 사랑했었어.”

“사랑했었어? 왜 과거형이야?”

수진은 설연의 머리를 쥐어박고는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아이고, 니들 손잡고 벚꽃 구경 갔냐? 벗고 안 걸려서 다행은 다행이다.”

“아줌마 개그”

설연은 지금 상황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 달리는 차 창밖으로 벚꽃이 흩날린다. 그렇지 않아도 그 남자와는 끝내고 싶었다.

“우리 다음 드라마는 어떻게 돼?”

수진은 여전히 기사 내용을 살피고 있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친한 사이일 뿐이다. 생각하는 그런 사이 저어언혀 아니다. 발표하고 끝내. 난 이미 끝냈어.”

수진이 뒷목을 잡았다.

설연은 얼마 전, 스캔들의 남자와 홍대 인근에서 데이트를 했다. 밤늦게 허름하고 작은 술집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주인만 혼자 있었다. 주인은 젊은 남자였는데 설연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남자 배우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눈을 자꾸 피했다.

“맥주 두 잔이랑 과일 안주 주세요.”

설연이 그냥 주문을 했다. 가게 주인은 잠시 머뭇거렸다.

“따뜻한 사케도 있는데.”

“맥주요.”

설연이 주인의 눈을 똑바로 바로 보며 말했다.

“그럼 안주는 어묵탕 같이 따뜻한 걸로 하는 게 어때요?”

주인은 다시 태클을 걸었다.

“살쪄서 그래요. 과일 안주로 주세요.”

설연이 다시 주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 봤다. 주인은 다시 머뭇거렸다.

“아, 그냥 달라는 대로 줄 것이지. 뭘 그렇게 주문이 많아요? 가자! 재료가 영 아닌가 보구만.”

남자 배우가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설연이 남자 배우 팔을 잡았다.

“그냥 맥주랑 과일 안주 줘요.”

생맥주 두 잔과 모양 좋게 담겨진 과일 안주가 나왔다.

“잘 깎네. 신선하고 맛있어. 주인장도 좀 유도리 있게 장사해. 젊은 사람이 그렇게 장사해서 손님 다 쫓아. 본인이 잘하는 거 말고 손님이 원하는 걸 하란 말야.”

남자 배우는 맥주를 쭉 들이키고 과일도 우적우적 씹었다.

“우리 애기는 뭐 줄까?”

설연도 목이 탔던지 맥주를 한잔 쭉 들이키고 수박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설연은 온 몸에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래?”

설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체했나봐.”

“화장실 저기 있어요.”

주인이 물수건을 건네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물수건이 따뜻했다.

설연은 화장실로 달려가 심하게 구토를 하고 기진맥진이 되어 물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물수건이 아직 따뜻했다.

“근처 약국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냐? 하, 내가 가긴 그렇고.”

남자 배우는 성가신 얼굴이었다. 그 순간 다시 설연은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저기 부탁 하나만 합시다. 근처 약국에서 약 좀 사다 줄 수 있어요?”

주인은 말없이 뒤돌아 무언가를 컵에 탔다.

“쟤는 술도 잘 마시는 애가 갑자기 왜 저래? 나 이번에 영화 들어가서 스캔들 나면 안 되는데.”

설연이 얼굴이 하얗게 되어 나오자 남자 배우가 걱정했다는 듯 얼른 부축을 해서 자리로 돌아왔다.

“안 되겠다. 너 매니저 불러야겠다.”

주인은 뿌연 물이 담긴 컵을 설연에게 건넸다.

“천천히 마셔요. 조금씩.”

설연이 잠시 주춤하다 컵에 손을 뻗자 남자 배우가 컵을 뺐었다.

“야, 이게 뭔 줄 알고 먹어? 병원에 가자.”

설연이 다시 컵에 손을 뻗었다. 남자 배우가 컵을 미는 바람에 컵이 쏟아져버렸다. 남자 배우는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거스름돈은 여기 컵 값으로 해요.”

설연은 쏟아진 액체의 구수한 냄새를 맡았다. 속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저기, 죄송한데 이거 한잔 더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주인은 말없이 다시 찬장에서 통을 꺼내 희여멀건한 가루 한 스푼을 담아 뜨거운 물에 탔다.

“조금씩, 천천히.”

설연은 천천히 주인이 건넨 물을 마셨다. 설연의 얼굴색이 돌아오면서 속에서 끓어오르던 물이 잠잠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해졌다.

설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주인이 눈으로 대답한다.

‘글쎄,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초희일 수도 있고, 지영일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토사곽란이었어요. 위장이 약한 상태에 차가운 걸 먹으면 그럴 수 있어요. 지금 드린 약은 오령산이라는 한약입니다. 이상한 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주인이 남자 배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한이 조금 남아 있을 테니 따뜻하게 하고 자요. 그리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

주인은 이제 그만 나가달라고 문을 가리켰다.